북다트



가 책을 읽는 장소는 1. 연구실, 2. 자취방, 3. 용인집의 내방, 이렇게 3군데이다. 여러 권 늘어놓고 야금야금 보는 체질은 아니지만 한권을 다 쪼개놓을 때까지 들고다니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2~3권 정도 같이 읽게 되기 마련이다. 뭐든 그 본분을 다하는게 맞다고 보는 나는 CD는 뽀샤질때까지 돌리고, 책은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읽는 주의지만, 아무래도 읽다만 책장 귀퉁이를 접어놓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두꺼운 페이퍼백의 전공 관련 책이 아닌 이상은 - C언어 레퍼런스로 자주 보는 ABC 책이나 Understanding Linux Kernel같은 책은 접혀있는 부분이 많을 수록 정겹다 - 책에 메모나 낙서를 하는 일에 나는 좀 낭만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것도 성실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군대 있을 때 도서관에서 한 여학생이 빌리는 책마다 남겨져있는 메모를 보고 보다가 그걸 남긴 남학생이랑 만나는 이야기를 상상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소설이 있어서 실망하기도 했고... 그래도 나중에 나나, 혹은 누군가가 내 책을 읽게 될 때 그런 메세지를 보고 또 다른 생각을 한다면 멋지지 않을까.

어쨌거나 여러 책마다 책갈피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가끔 책에 책갈피를 끼워주지만 다들 책광고가 들어가있고 자기개발서나 애먼 인간의 잘난 자기주장서처럼 마음에 안드는 책들의 광고인 경우가 많아서 쓰기가 싫다. 그래서 항상 옆에 있는 다른 책이라던가 동전같은 것들을 책갈피로 사용했다. 그걸로 충분한 것이, 다 읽기 전에 그 책을 어디로 들고가는 일은 앞서 말한 것처럼 거진 없기 때문이다. 북다트의 존재야 진작에 여러 쇼핑몰에서 보고 알았지만 그런 이유로 사지 않고 있었는데, 내 손에 들어온건 정말 순간의 변덕과 쇼핑몰의 악마같은 마일리지 제도 때문이었다. 그놈의 선물봉투를 마일리지로 사고 싶어서.

북다트의 미덕은 가장 심플하고 기능적인 것이 가지는 바로 그것이다. 광고 그대로 끼우고 빼기도 편하고 표도 안나고, 몇번째 줄까지 읽었는지 표시하기도 좋고, 이쁨직하고. 하지만 그보다도 북다트가 가진 최대의 매력은 '손때가 탄다'는 것이다. 하나 꺼내두면 한권 다 읽고, 다음 읽을 책에 꼽아두는데 점점 까맣게 바래가며 금속이 광택이 사라져가는 것이 무척이나 이쁘다. 책을 선물할때면 북다트를 2~3개 정도 옆에 꼽아두고 그도 한권 한권 읽어가며 그의 지문으로 바래진 쇳덩이를 갖길 바라곤 한다.

by -浪- | 2009/11/03 01:02 | 공산품 | 트랙백 | 덧글(5)

자전거 길


은 자전거 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전거 위나 그냥 자전거라고 하는게 옳은 말일지도. 가끔 날카로워져 주위의 기척조차 달갑지 않을 때면 괜시래 싸납게 구느니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를 도는게 낫다. 작년쯤에 자전거 샀을 때는 나를 달리게 하는건 자전거 뿐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문구를 떠올렸는데 이제와서 보면 그런건 아니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이동하는 자전거 위의 공간은 많은 주변을 스쳐가지만 그것들을 놓칠만큼 빠르지도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을만큼 보고 곰씹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캠퍼스를 한바퀴 도는 것도 좋지만 수원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조금만 나가도 오가기 좋은 길들이 나온다. 가끔 심야 영화를 보러 수원역에 나갔다오면 막차 걱정 안해서 좋고 애경백화점은 여자애들이 다들 이쁘다. 수원역 가는 길은 저수지를 끼고 가는 길을 찾은 다음에는 인도/차도를 피해다니지 않게 되었다. 늦여름에는 바로 앞에 포도 농장들이 있어서 포도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면서 다니는 것도 기쁨이다. 그래도 제일 자주 지나치는 곳은 개발 제한 구역으로 지정되서 논밭이 있는 부근이다.


이제 추수를 했겠지만 조금씩 익어가는 벼라던가, 가득한 풀벌레라던가 오랜만에 본 뱀, 길가의 코스모스같은게 소중하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것도 기분좋고. 수원은 오래되고 서울만큼은 아니라도 많이 번잡한 도시라서 이런 공간은 드문데. 그렇다고 해서 자연을 느끼기 위해서 이 쪽을 찾는건 아닌 것같다. 논과 밭도 아스팔트에 땅이 뒤덮여 있지 않을 뿐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맞추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화를 느끼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다. 물은 농업/생활 폐수라 깨끗하지도 않고, 다니다가 아저씨들이 까맣게 그슬린 개잡는 것도 보았다. 얼마전에 강호순 사건 때 그의 활동 범위가 이 근처였고 한 건은 바로 이 자리에서 있었다. 인간의 시선이 곳곳에 닿지 않는 곳에서는 그러한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홈즈가 언젠가 왓슨에게 말했던 것처럼. 친구 하나가 이쪽 동네에 사는데 사건 당시에는 괜히 신경쓰이고 찝찝하더라. 그치만 이쪽 길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같은 이유에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이성의 오인이 마구 설쳐대지 않을 자리가.

by -浪- | 2009/10/27 00:32 | 그냥 말하기 | 트랙백 | 덧글(0)

SF의 혼


SF가 어떤 이야기인지 대해서 가장 잘 이야기해준 글은 어슐러 K. 르권의 어둠의 왼손 서문일 것같다. Science Fiction에서 픽션은 말 그대로 꾸며댄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앞의 과학이 픽션을 수식한다면 '과학적으로 꾸며댄 이야기', 이게 SF가 되겠지만 흔한 오해와 달리 그렇지가 않다. SF에서 두 단어의 관계는 정반대로 그러니까 세계의 근간인 과학을 완전히 꾸며댄 이야기, 그것이 사이언스 픽션이다. 자유롭게 세계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던지고, 혹은 누군가를 마음대로 말도 안되는 세계에 떨어뜨리는 것이 가능한게 SF라는 장르다. 그래서 또한 SF는 가장 직설적인 장르가 되는 것이다. 머리가 굳어버린 꼰대들에게 이건 꾸민 얘긴데 뭘 민감하게 구는거냐고 시침을 뚝 떼면서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할까. 결국 모든 이야기가 그런 것처럼 인간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외계인이나 안드로이드를 툭 던져놓고 인간이 뭐냐는 질문에서부터 성, 사상, 세계에 대한 인식까지.

by -浪- | 2009/10/19 12:16 | 주머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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