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필름을 들춰본다. 슬라이드 마운트는 처음 몇번만 한 것같은데 내 카메라는 컷과 컷 사이가 좁게끔 가로가 길게 찍히기 때문에 잘려나가는 부분이 아까워서 그랬던가? 나중에 볼때는 확실히 마운트한 편이 좋네. 네가는 살짝 다시 스캔해봤는데 필름 휜 것도 휜 거고 먼지가 장난아니다. 힐링 툴로 하나씩 문대면서 먼지를 지울때마다 디지털로 옮겨가야되나 한숨을 푹푹(새로 나온 카메라 리뷰같은걸 볼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봤자 디지털이 아니라서 AE가 아니라서 초당 몇 연사가 아니라서 사진을 못 찍는다는 이유로 그런는건 아니고 딱 그때만 툴툴거리는 거다.
굳이 필름 감성 같은 이유로 필카를 선택한 건 아니고 디지털이나 필름이나 그냥 매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양자 모두가 사진을 찍는 순간부터 프린트건 화면이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순간까지 많고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되니까. 대신에 매체 자체의 물리적인 차이에 있어서 필름을 더 좋아한다. 소모품이라는 거나 한번에 세트로 24/36 장을 찍어야 된다거나 필름 책에 보관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것들. 하긴 이제 고작 1년 사진을 찍은 건데 잘난척 이러쿵 저러쿵할 정도는 안되겠지.
고작 1년인가. 올해는 프로젝트 한개를 마감 넘겨가며 질질 끌어왔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한 해같은데 돌아보면 박사 본심 커트라인 점수 채울 논문들이 나오고 봄, 가을에 각각 시합 한번씩,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지난 겨울 사진을 보면 누구는 다른 생활을 시작하고 누구누구는 남자친구가 생기고... 이게 고작 10~11달 사이의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그보단 좀 더 오래되서 뭐랄까 이제 떠난 다른 세상 같은 느낌이 드는데. 남는게 사진밖에 없는 그런 하루 하루를 살고 싶은 맘은 없다. 사진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엔 나는 아직 멀었나보다. 내년 이맘때에도 나는 또 다시 따뜻해보이지만 생소한 정경이 담긴 필름을 보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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