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6일
침묵과 열광이라는 이름의 괴물
데이비드 카퍼필드라고 하면 명절마다 TV서 만나는 마술사를 떠올릴테지만, 찰스 디킨스의 소설 제목이고 화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마술사도 여기서 이름을 빌렸다 한다. 왜 그는 이 이름을 가져가 썼을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내겐 너무 어렵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게 솔직한 말이다. 단지 가설을 세워볼 뿐인데, 나오는 인물들을 한 명씩 찾아내면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악역은 누구보다 유라이어 힙이다. 어느 영국산 밴드의 이름과 같다. 데이비드 카퍼필드란 이름은 사실 소설에서 나온거란다-라고 으쓱하면서 읽다가 유라이어 힙이 나오는 것을, 그리고 밴드 역시 이 소설에서 이름을 가져다 썼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의 무지에 몸둘바를 모르겠더라. 하기사 텔레비젼 퀴즈쇼도 아니고 그게 뭐가 중요하겠느냐마는... 밴드가 왜 그 이름을 썼는지도, 나는 감도 안온다. 69년 밴드가 아직도 신보를 내나.
어쨌거나, 나는 유라이어 힙을 찾아낸 것 같다. 황우석, 그의 족적을 들여다보면서 그랬다.
'황우석 사태'라는 이 엄청난 사건을 나는 잘 몰랐다. 당시 나는 군바리였는걸. 인문, 사회에는 그야말로 무지했고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물리, 화학, 생물 중에 생물이 여태 사이가 가장 안좋은걸 어쩌겠냐. 구석진 방에서 죽어라 노래나 듣던 시절에 처음으로 황우석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학교장 - 우리 부대는 학교 기관이라서 - 이 난데없이 전 간부 및 기간병을 불러 모아 특강을 했을 때였다. 아마 그 군인의 마음에도 뜨겁게 다가오는게 있었나부다. 원채 사람들 앞에 두고 말을 잘하던 사람이라,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잘 살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아주 감동스러운 명강의를 펼쳤다.
나는... 그리 달갑지 않았던 기분이었다. 그 때 일기장이 아직 남아있다. 내가! 일기를 쓰던 시절이었다. 2005. 6. 27. 낮뜨거운 단어들의 묶음 사이에- 나는 이제 무얼 해야하니. 라고 써있다. 어린 시절에 생명 윤리같은 이유로 우울하진 않았을거 같고, 석연찮다는 생각도 못했을게다. 뭘 안다구? 민족주의, 파시즘 그런거 모를 때다. 비비꼬여서 그냥 싫었다.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는 죽어도 못할 말을 알면서도 속으로 하고 있었다. 이후엔 어차피 접근 경로도 적고, 일부러 소식을 피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건 쇼구나' 라는걸 TV에서 입원한다고 난리치는거 보고, 마침내 알았던 기억은 있다. 스크린 속에 왠 분바른 것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걸 보자니, 이걸 보고도 모르겠냐.
나는, 안도했고 그렇게 그 시간을 보냈다. 과학에 있어서 위증은 웃기지도 않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상식이 내가 가진 판단의 전부였다. 모든 것이 끝나기는 커녕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안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월드컵- 꼭지점 댄스를 시작으로 노무현, FTA, 고구려, 디워, 그리고 지금. 오늘에 이르러 그 기록을 들추어보는 것은, 때문에 과거의 상흔을 캐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이름 그대로 황우석을 둘러싼 7년 간의 풍경들을 짚어가고, 그리고 재미있다. 픽션, 논픽션을 막론하고 어지간한 사건들도 감히 옆에 두기 힘든 스펙타클 판타지. 그럴싸하게 꾸며진 얼굴과 뒷켠의 분열들. 어느 연구원의 메일 속, Self Cloning이라는 단어는 정말 슬프다. 드라마는 안봤는데, 누가 분칠한 것들은 믿지말라고 그랬다지? 이 말이 정말 무서운 것은, 깨끗하게 클리닝한 생얼이 꾸민 얼굴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티없이 예쁜 얼굴을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얼굴의 누군가 한 사람이 등장하여 우리를 이끌어 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그리하여 나의 뒤틀린 심성은 당시의 알리바이가 되었지만, 이무기를 건너 작금의 괴물을 낳은거 아니냐.
숫자 몇 개와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소설이니 영화니 싸다구를 후려갈기는 충격들의 연속은 여태 그렇게 남아있다. 끝내 초유의 사기극이었음이 밝혀진 다음에도 사과한 놈이 몇이나 있냐. 안 찾아봐도 알만하다. 경향 일보의 반성 전문을 구태여 실어 놓은 것을 보면... 서문에 따르면 쓰는 와중에 사건이 터졌다고 하니 그야말로 최전선에 세운 진지가 기록으로 남은 샘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을 지배하는 정서는 고발도 정의도 아닌 외로움이다. 승리의 기쁨과 함성은 커녕, 허탈한 울분만이 남아서... 진득한 외로움이 배어온다.
슬프게도 황우석은 돌연히 나타난 이레귤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낳은 괴물이다. 황우석은 잡았지만 이를 낳은 틀은 여태 살아남아 다시 심형래에게 '우리 기술'로 미국 시장을 '재패' 해주길 바란 것 아니었나? FTA. 요컨데 우리 차, 우리 휴대폰을 더 많이 팔아먹고 싶다. 우리 박지성이 세계 최고의 리그 결승전에 못나가서 원통하고 분하다. 우리는 고구려의 기상을 물려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계를 좌지우지하여야 마땅하다. UN 인장은 삼족오로 가자. 누구는 이를 촌놈들이라고 일갈하고, 누구는 있지도 않은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했지만 들은 채 만 채. 오히려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녀석은 우리의 뿌리를 모르는 역적이니, 죽음으로 죄를 다스리도록 하라니. 자- 황우석이 졌다고 한들. 누가 이겼다는거냐?
기어코 우리는 다시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을 만들어주겠노라고 슬슬 구슬려놓고선, 금새 본색을 드러낸 누군가를 만나 마침내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쉽게도 이 브레이크가 앞서 황우석을 잉태한 괴물을 가로막은 건, 아니다. 우리는 이명박을 아키히로로 바꾸어 일본인-타자로 만들어야 하고,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심지어는 황우석이 다시 광우병 예방 유전자 변형 소를 들고 나오길 기원하기도 한다. 반대 의견은 푼돈에 혼을 판 알바들의 것이다.
지금 피어오른 촛불이 저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까. 희미한 가능성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권위를 씻어낸 무리의 의사결정 과정은 어쩌면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다. 규율이 사라진 질서는 왠지 호러 영화에 나오는 벌레를 뒤집어쓴 유령이 생각난다. 각각의 개체는 제멋대로 움직이지만 어떤 중심과 흐름을 가지고 있는... 벌레 한 둘을 털어내는 것으론 택도 없고 이를 물리치려면 그 중심의 영을 물리쳐야 하는, 지금의 촛불의 가운데에 있는 것은 정의 상 도무지 적들이 이겨낼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를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보려고 삿된 짓거리를 일삼다가 밀리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지금의 촛불이 질수는 없다고 나는 믿는 것이고, 그 근간이- 중심의 영이 바람직한 것이기에 이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바깥에 대한 태도도 바람직한지는 의심스럽다. 소위 서강대녀에 대해선 정말 서글프다. 그녀의 마음에 어떤 상흔이 남을 것인가. 다양한 스펙트럼은 어쨌든 좋은 말이고, 그네들은 그네들 따름의 어떤 정의감으로 움직이고 있으리라. 단지, 약간 잘못 알았거나 약간 덜 알았거나. 그것만으로 이렇게 매서운 매를 맞아야 하다니. 다행스러운 일은 그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밀어붙여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이고, 여기에 다시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지만...
최악의 가정- 아니 이미 과거에 황우석에 의하여 분명하게 한번은 드러났던 일.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무서운 힘을 가지게 된 상황에서, 그 가운데에 자리한 것이 위선과 짙은 화장, 그리고 어떤 탈을 쓰고 있는 억압된 욕구라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금 우리가 MB에 대항하여 펼치고 있는 전선과 황우석에 대한 반론을 대하는 모습은 하등 다를바 없었던 것 같다. 만약에 황우석이 정말로 속임 없이 자신의 연구를 지금까지 가져가고 있다면? 아직도 얼마 간의 사람이 그의 귀환을 기다리고, 또 좀 더 많은 사람이 진짜를 들고 온다면 꺼림없이 용서해줄 지금, 나는 이 가정에 몸을 부르르 떤다.
다시 한번, 저자들은 이 글을 황우석의 연구 결과의 진위 여부가 가려지기 전에 쓰고 있었다고 한다. 왜? 이놈이 사기꾼이라는걸,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단코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대다수의 우리가 구축한, 황우석 사태를 만들어낸, 침묵과 열광이라고 이름한 괴물에 대항해 싸우던 몇몇의 사람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어제를 돌아봐야 하는거 아닌가.
# by | 2008/06/16 03:35 | 책으로 말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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